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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덕혜옹주가 주는의미는?
2010-08-16 오후 7:40:41 4711
덕혜옹주가 주는의미는 ?


아마 다들 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는것은 아니지만 덕혜옹주하면 들어보았을 것이다.

최근 그녀의 왕실 복식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종에겐 명성황후와 후궁사이에 4명의 딸을 두었지만 모두 사망하고 유일하게 덕혜옹주만이 남았다고하는데 환갑의 나이가 다 되어 본 딸을 귀히 여긴 고종황제는 이런 막내딸을 가까이 하기 위해 덕수궁내 준명당을 개조해 덕혜옹주를 교육하는 교육관을 만들정도로  아낀 딸이라고한다.



그러한 딸이 서구문물의 유입에 따른 변화과정을 생생히 겪고 한일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속에 희생되어 진 비운의 황녀로서 현재에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은 아마 역사속에서 덕혜옹주의 삶이 그많큼 순탄치 만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에 무관심함 현대에 의미를 제공하라
항상 맑고 영롱한 눈을 소유한 그녀의 눈이 퇴색되어진 것이 역사속 현실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조선의 황실 복식이 아닌 기모노를 입은 그녀의 눈빛은 우수에 잠기다 못해 쓸쓸해 보일정도로 변해갔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던 덕혜옹주는 12살의 어린나이에 자신을 끔찍히 사랑해주던 고종의 죽음과 어머니와의 생이별은 그녀에게 크나큰 고통이었을것이다. 이 무렵 일본에서 옹주를 만난 영친왕(순종)과 이방자 여사는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 내가본 옹주와는 영 달라져 있었다. 처음 봣을때 나를 매료시켰던 발랄하고 영롱한 눈초리는 아예 찾을 수 없엇다. 옹주는 나를 보고 미소 조차 띄지 않았다. 고 큰 상처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증언하기도 했다.

그후 19살 때 일본 대마도주의 후손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강제로 혼인햇으며 외동딸인 정혜(일본명 마사에)의 실종까지 겪은 뒤 1962년에야 국내로 돌아 올 수 있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읺나 생활고와 정신분열증의 발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또 여기에 정혜의 실종을 겪으며 곤궁한 생활을 한 한.일 양국 불행한 역사의 희생자였다. 1962년 국내로 돌아와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 1989년에 그 한많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는 한 여자로서 , 어머니로서 나라의 왕녀로서 이렇게 크나큰 아픔과 비운의 삶을 산 사람이 있을까 ?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지나간 역사에 충분한 사과를 했으면 그만이다. 라는 생각을 가진것을 알고 많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장점과 경제력과 문화를 모조건 적으로 동경하고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봤을때도 이 생각은 문화적 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관심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마저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역시 적지 않은 숫자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실에서 덕혜옹주의 황실복식 공개와 그녀의 삶에대한 재조명은 그의미가 남다르고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